
참부모님께서는 1971년 6월 17일, 원성전 건립 부지에 첫 곡괭이질을 하셨다. 참부모님께서는 이 청평수련원이 섭리사의 완성적 성소가 된다고 말씀하시며, 터 파기 공사부터 완공 때까지 매일 현장을 찾아 공사 진척 과정을 챙기시는 등 지극한 정성을 쏟으셨다. 경기도 구리시 중앙수련원에서 수련 중이던 교회장 후보자 28명이 건설대원으로 되었으며, 이들은 현장에서 숙식하며 주야로 작업에 임했다. 참부모님께서는 축대 쌓기에서부터 목공, 온돌 시공, 우물 파기 등 작업을 일일이 감독·지도하셨다.
처음에 축대를 쌓을 때 외부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그런데 비가 오자 전문가들이 일을 하러 오지 않아서 참부모님께서 직접 현장에 나서셨다. 당시 건설대원들을 이끌고 공사를 진두지휘 하시며 돌을 놓는 방법과 쌓는 요령을 하나하나 가르치셨다. 이에 대원들은 지시에 따라 축대를 쌓아 올렸다. 그 뒤 장마가 찾아와 물이 넘쳐 마당까지 차올랐다가 한순간에 쫙 빠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쌓아 올린 것들은 모두 무너졌으나, 참부모님께서 쌓으신 것은 끄떡없었다. 이를 지켜본 이들은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참부모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더라도 이미 모든 것을 아시기에, 우리가 그 심정과 하나되어 나아간다면 무엇이든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던 1971년 7월 6일이었다. 주문한 슬레이트가 도착하지 않자 참부모님께서 직접 나서시어 밤 11시 반에야 겨우 배로 슬레이트를 실어오셨고, 대원들은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슬레이트를 얹어 지붕을 완성하였다. 주변에서 ‘도깨비 집’이라고 말할 만큼 짧은 시간에 마무리 공사를 하였다. 참부모님의 직접 지휘 아래 악천후 속에서도 마무리 건설 작업이 계속되었고, 7월 12일에 원성전이 완공됨으로써 천보역사 소생기가 출발하였다.
참부모님께서는 1970년대 초반 기독교 목사와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통일원리를 소개하는 원리공청회를 기획하고 진행하셨다. 청평수련원 원성전이 완공되던 1971년 7월 12일, 예정대로 기독교 목사 28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목사 하계 수양회’가 개최될 수 있었다.
청평성지 일대 산과 호수 명명

참부모님께서는 1972년 7월 10일, 장락산(長樂山) 정상에서 일대의 이름을 새로 명명하셨다. 새로 이름 지은 곳은 모두 ‘천(天)’으로 시작되며 1호(湖), 1장(莊), 1장(場), 3대(臺), 15산(山) 등 21종에 이른다. 즉 천심호(天心湖), 천유장(天遊莊), 천사장(天砂場), 천승대(天勝臺), 천인대(天引臺), 천위대(天衛臺), 천안산(天案山), 천문산(天門山), 천영산(天迎山), 천응산(天應山), 천예산(天譽山), 천현산(天現山), 천향산(天向山), 천호산(天好山), 천원산(天援山), 천수산(天守山), 천선산(天善山), 천룡산(天龍山), 천성산(天聖山), 천성산(天城山), 천성산(天成山)이다. 참부모님께서는 이 명칭들의 의미를 종합하면 이상동산의 뜻이 드러난다고 하셨다. 선인봉(仙人峯)은 이에 앞서 1971년에 먼저 명명해 주셨다.
청평성지는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풍수지리로 보면 금환락지(金環落地)에 해당하는 명당이라고 할 수 있다. 참부모님께서는 청평수련원 동쪽에 있는 장락산을 천성산(天聖山)으로 명명하셨으며, 이는 청평성지에서 제일 높은 산에 해당한다.

영계개문의 기원
참부모님께서는 청평성지에서 들이신 정성의 결실로 조상 해방의 첫 단계를 여시면서 영계개문(靈界開門)의 기원을 이루셨다. 1973년 8월 5일, 청평수련원에서 참부모님의 주재 가운데 ‘문씨 씨족 해방식’이 거행된 것이다.
1975년 5월 1일에는 참부모님의 주관하에 ‘총해원식(總解怨式)’이 청평수련원에서 거행되었다. 청평성지에서 거행하신 이유는 이곳이 국제적 섭리의 기반인 동시에 모든 영적 운세가 집결하는 곳이며,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참부모님께서는 1978년 11월 2일, 청평수련원에서 통일해원식을 거행하시고 문씨 종족 해방과 세계 종족 해방을 선포하셨다. 참부모님께서는 이를 통해 영계의 장벽이 무너져 내리고, 영육계가 연결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조상들은 어디든지 자유롭게 재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